지방소멸, 인구절벽이라는 단어가 대한민국을 엄습할 때마다 늘 가장 먼저 호명되는 잔인한 이름이 있다. 바로 경북 의성군이다. 1960년대 인구 21만 명에 육박하던 당당한 농업 거점 도시는 이제 인구 5만 선을 위태롭게 지키고 있다. 대한민국 산업화 과정에서 벌어진 보편적 이촌향도(移村向導)라 위로하기엔, 의성이 마주한 절벽의 깊이는 유독 가파르고 치명적이다.
우리는 그간 이 절벽 위에서 숱한 약처방을 쏟아부었다. 하지만 냉정하게 돌아보자. 지금까지 시행된 수많은 인구 정책은 과연 원인을 제대로 짚은 처방이었는가, 아니면 눈앞의 수치만 모면하려던 공학적 착오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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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군이 겪은 대표적인 정책적 과오는 대다수 지방자치단체가 저지른 실패의 축소판이다. 단기적인 현금성 지원(출산축하금, 정착지원금)은 돈만 챙겨 다시 떠나는 ‘인구 체리피커’만을 양산했을 뿐, 지속 가능한 정주 인구로 이어지지 못했다. 막대한 예산을 들여 지어놓은 수많은 하드웨어 중심의 시설들은 지금 어떤가. 번듯한 청년 창업 공간이나 스마트팜 시설을 지어놓고도 그곳을 채울 소프트웨어나 지역 사회의 정서적 결합을 고민하지 않아, 결국 ‘ 보여주기식 행정’의 실패 사례로 남은 경우가 허다하다. 외부 유입 청년들에게 파격적인 혜택을 주는 ‘이웃사촌 시범마을’ 같은 시도 역시, 기존 지역 주민들과의 정서적 괴리감을 좁히지 못해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뺀다”는 보이지 않는 갈등의 장벽에 부딪히곤 했다.
이러한 정책 착오와 실패의 중심에는 언제나 ‘인간’과 ‘의식’에 대한 부재가 있었다. 진짜 원인은 예산의 부족이 아니라, 지역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완고한 심리적 구조에 있다.
지금 의성에 남은 어르신 세대는 그 누구도 탓할 수 없는 눈물겨운 역사의 주인공들이다. 뙤약볕 아래서 마늘밭을 매고 과수원을 일구며, “내 자식만큼은 흙을 묻히지 않겠다”는 숭고한 교육열로 자녀들을 대도시로 유학 보냈고, 번듯하게 성공시켰다. 이들에게 의성은 자식을 키워 대도시로 탈출시킨 성공 신화의 현장이며, “난 이제 내 할 일을 다했다”는 완결된 노년의 자부심이 지배하는 공간이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이 위대한 자부심이 지금 의성의 미래를 가로막는 가장 단단한 민주적·문화적 장벽이 되고 있다. 인구 구조상 투표권과 의사결정 권력을 독점한 어르신 세대의 목소리가 지역의 관성을 유지하는 데만 쓰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평생 지켜온 동네인데 너희가 뭘 아느냐”는 완고함 앞에, 새로 유입되려는 청년들의 대안적인 목소리와 역동성은 설 자리를 잃는다. 출가한 자식의 성공만을 유일한 훈장으로 삼는 한, 의성은 언제나 대도시의 배후 공급처이자 노인들만 남은 정적인 공간으로 머무를 수밖에 없다.
이제 우리는 얄팍한 예산 투입이라는 약처방을 멈추고, 의식의 대전환이라는 원인 처방을 시작해야 한다. 그 처방의 핵심이 바로 ‘양보와 환대’다.
첫째는 권력과 공간의 ‘양보’다. 어르신 세대는 이제 지역의 의사결정 주도권을 미래를 살아갈 청년과 신규 유입자들에게 과감히 이양해야 한다. 통합신공항 배후도시 건설이나 관광·교육 인프라 구축 같은 지역의 명운이 걸린 대형 프로젝트의 기획부터 실행까지, 청년들이 실질적인 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제도적 숨통을 열어주어야 한다. ‘할 일 다한 세대’의 역할은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 세대가 마음껏 실패하고 도전할 수 있도록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는 일이다.
둘째는 낯선 미래에 대한 ‘환대’다. 어르신들의 삶의 목적이 ‘도시로 간 자식 자랑’에서 ‘우리 동네에 들어온 청년 자랑’으로 옮겨가야 한다. “내 자식이 서울 대기업에 다닌다”는 과거의 자부심을 내려놓고, “우리 동네 도서관에서 아이들을 위해 푸드트럭을 운영하는 저 청년이 참 대견하다”며 이웃을 환대하는 문화가 정착되어야 한다. 청년들이 이 지역을 선택했을 때 고립감을 느끼지 않도록, 지역의 공공 공간과 공동체가 그들을 따뜻하게 품어 안는 문화적 정서 전환이 시급하다.
지금 의성에 남은 세대에게는 죄가 없다. 그들은 다만 성실하게 살아왔을 뿐이다. 그러나 그 성실함의 결과가 지역의 소멸이라면, 이제는 그 성실함의 방향을 바꾸어야 한다.
훈장처럼 가슴에 단 자식 성공의 영광을 잠시 내려놓고, 지금 곁에 있는 청년들의 서툰 시작을 민주적으로 응원해 주는 어르신들의 ‘위대한 퇴장과 포용’이 필요한 시점이다. 어르신들의 자부심이 청년들을 향한 ‘양보와 환대’로 피어날 때, 의성은 비로소 절벽의 끝에서 돌아와 지속 가능한 미래를 꿈꿀 수 있을 것이다. 정부와 지자체 역시 껍데기뿐인 예산 지원을 넘어, 지역의 마음을 움직이는 근본적인 의식 개혁과 세대 간 공존의 생태계를 짜는 데 정책의 모든 역량을 집중해야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