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운 정 고운 정, 그리고 ‘의성의 인물’을 품는 법
여우는 죽을 때는 제가 살던 굴을 향해 머리를 바꾼다고 한다. 하물며 만물의 영장이라는 사람이 거친 세상사에서 치이고 다치고 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곳이 어디겠는가. 내 탯줄이 묻힌 곳, 철모르던 시절 동무들과 들판을 뛰놀던 고향의 흙내음일 것이다.
최근 의성 땅 곳곳에서 안평면 출신의 김재원 국민의힘 최고위원의 모습이 자주 목격된다. 읍내 장터의 좌판 앞에서도, 면 단위의 크고 작은 행사 현장에서도 그의 부지런한 걸음걸이가 군민들의 눈에 밟히고 있다. 중앙 정치 무대에서 굵직한 궤적을 그리던 거물 정치인의 잦은 고향 방문을 두고, 일각에서는 정치적 재기나 미래를 위한 치밀한 포석이라며 지극히 계산적인 정치공학의 잣대를 대기도 한다. 그러나 현장에서 만나는 군민들이 체감하는 온도는 사뭇 다르다. 그 저변에는 정치적 셈법을 넘어선, 인간 김재원의 애틋한 고향 복귀와 이를 바라보는 의성 사람들의 미묘한 심리 변화가 자리 잡고 있다.
사실 돌이켜보면 2024년 총선 당시 고향 사람들의 시선은 냉담하기 그지없었다. 오랫동안 닦아온 안방이라 자만했던 탓일까, 기득권에 안주했다는 따가운 질책과 매서운 채찍이 고향 부모 형제들의 손에서 쏟아졌다. 결국 당내 공천 과정에서 밀려나며 텃밭을 내주어야 했던 그 대가는 혹독했다. 어디 그뿐인가. 올해 치러진 경북도지사 선거에서조차 뜻을 이루지 못하고 연이어 공천의 고배를 마셨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던 정치인이 겪은 연이은 좌절은 중앙 무대에서의 고독감을 더해 주었을 것이다.
그 모진 비바람을 맞고 그가 가장 먼저 발길을 돌린 곳은 결국 안평면 고향 땅, 부모님의 산소였다. 거친 풍파에 심신의 옷자락이 찢긴 채 찾아와 묘역의 잡풀을 솎아내고 엎드려 절을 올렸을 그의 뒷모습에서 우리는 정치인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자식으로서 느끼는 사무친 ‘수구지심(首丘之心)’을 보게 된다. 세상 모두가 등을 돌리고 비판할지언정, 묵묵히 받아주는 고향의 산천과 부모의 품만큼 온전한 위로가 어디 있을까. 무덤가에 서서 고향의 바람을 맞으며 그는 지나온 길을 성찰하고, 스스로를 낮추는 결자해지(結者解之)의 심경을 다졌을지 모른다.
이러한 눈물겨운 발걸음을 군민들은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 처음에는 ‘선거에서 떨어지니 이제야 고향을 찾느냐’던 얄미운 시선이, 매번 낮은 자세로 흙먼지 묻은 손을 잡아오는 그의 진심 어린 행보 앞에 차츰 녹아내리고 있다. 장터에서 혹은 행사장이나 식당에서 국민의힘 최고위원이 아니라 안평사람 인간 김재원의 모습이 자주 들려온다. “얄미운 짓을 할 때도 있었지만, 타지에서 고생하다 저렇게 고향에 자꾸 얼굴을 비추니 짠한 마음이 든다”는 어느 장터 노인의 말처럼, 전형적인 ‘미운 정’이 ‘고운 정’으로 싹트고 있는 것이다.
호불호를 떠나 김재원은 야당의 최고위원으로서 중앙 정치권에서 당찬 목소리를 직접 내고있는 몇 안 되는 거물급 자산이다. 지역구 국회의원이라는 든든한 대들보가 있는 상황에서, 중앙 무대에 또 하나의 강력한 ‘지역 출신 스피커’를 갖는다는 것은 지역 발전의 외연을 넓히는 데 있어 결코 버릴 수 없는 카드다. 최근 고향 사람들이 그를 포용하고 손을 맞잡아주기 시작한 배경에는 이러한 현실적인 안목과 핏줄에 대한 연대감이 함께 작용하고 있다. ![]()
정치는 본디 차가운 논리로 움직이지만, 민심을 움직이는 종착지는 결국 따뜻한 ‘정(情)’이다. 고향의 부모 산소를 찾으며 초심으로 돌아간 김재원 최고위원의 행보를, 이제 의성은 단순한 정치적 유불리로만 재단하지 않는 정(情)의 시선으로 볼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이젠 김재원이란 이름으로 10년의 세월을 거푸 상처 입은 거물 정치인을 의성 군민의 품격과 넉넉한 인심으로 보듬어 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