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죽은 시인의 사회(N.H.Kleinbaum 지음)'로 알려진 ‘Dead poets society’란 원래의 의미는 ‘죽은 시인의 동아리’이다. 즉 ‘Dead poets society’란 존 키팅 선생이 그의 학창시절에 결성된 동아리이며 그 이름의 의미가 우리는 죽은 뒤에야 세상의 모든 의미를 좀 더 명확하게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정회원이 되려면 일생 동안 준회원 노릇을 해야 한다는 뜻이야. 그러니까 우리는 모두 준회원이었다는 셈이지. 죽은 다음에는 정회원이 된다고 생각했어”
망자의 시각에서 볼 때 우리의 삶은 어리석기 짝이 없는 선택과 행위를 하기도 하고 시간을 초월한 용기와 혜안의 결정을 하기도 한다. 영화로 만들어진 이 책은 한 번뿐인 인생에 있어 자신이 바라는 대로 살아가라는 내용이 핵심이다. 불행하게도 존 키팅 선생에 공감한 제자가 진로를 두고 부모와 갈등하다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하고 그로 인해 존 키팅 선생은 학교로부터 쫓겨나게 된다. 어쨌든 이 책은 지금도 수많은 독자에게 정신적 힐링을 주고 있으며 여러 사람에게 가치관의 정립과 교육의 본질을 생각하게 하는 우량도서로 각광받고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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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현실은 어떻게 보면 잘 닦인 도로를 가듯 그 도로를 가지않는 사람들에게는 가혹함을, 그 도로를 따라가는 사람들에게는 가치를 부여하는 보이지 않는 선택을 강요받고 살고 있다. 지금도 학교 수업을 마침과 동시에 밤 10시를 넘어 자정 가까이 오로지 공부만을 하는 길로 가야 하거나, 그 후 성인이 되어 사회에 나온 사람들도 도태되지 않으려 타인들의 시선에 편승하거나 익숙한 길로 가도록 강요받고 있다. 이런 사회분위기 속에서 존 키팅 같은 교육관을 지닌 심연의 스승은 우리의 학교사회에서 과연 존재할 수 있는 것일까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아니 대한민국의 존 키팅들은 학교에서 쫓겨나 거리의 노숙자로 방황하고 있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만일 제대로 된 교육이었다면 대한민국이 쓰는 엄청난 교육비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고 훌륭한 국민과 존 키팅같은 선생님들이 학교에 즐비하게 존재하는 국가를 만들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의 교육현실은 아이들의 교육에 투자하는 돈이 결국 비교육적인 지식전달 기술자들만 양산하고 있고, 앞으로 어디에 쓰이는 지도 모르는 수수께끼같은 교과과정에 모든 피교육자들을 매달리도록 가르치고 있다. 오히려 우리는 수많은 존 키팅들을 죽이고, 세상에서 가장 난이도 높은 수학과 영국인들도 잘 모르는 영문법과 독해능력으로 무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인들이 자주 받는 흔한(?) 노벨상 수상자는 제대로 나오지 않았고, 대학의 연구비는 선진국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현실이다. 오로지 교육비용이 자기자식을 위한 용도이지 사회나 국가를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과나무가 가지를 뻗을 때 잘못된 방향으로 나가면 사과가 많이 열릴 수록 그 나무가 쓰러질 위험이 크듯 잘못된 교육의 결과는 사회구성원을 서로 적대시하는 인성관을 가질 수 있으며 그로 인해 치명적인 대립을 가질 수도 있는 것이다. 정치인들은 수많은 교육정책을 처방전으로 내놓고 있지만, 비정상적인 사교육 비용조차 잡지도 못하고 있으며, 돈이 없는 서민들은 교육비용 때문에 자식에게 조차 미안한 마음이 드는 사회가 돼버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