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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보도] 농지 전수조사 파동과 의성 농정의 길

하태진 기자 입력 2026.10.01 22:53 수정 2026.10.01 22:53

흔들리는 의성 농심… 실체는 무엇이고 어디로 가나

- 농지값 하락·지역농협 부실 우려부터 고령화·지방소멸 가속화 경고까지
- 1950년대식 '경자유전' 원칙의 한계와 농지은행·스마트농업 대전환 시급

경북 의성군 농촌 현장이 때 아닌 ‘농지 전수조사’ 소문과 불안감으로 크게 흔들리고 있다. “조사 나오면 땅을 강제로 빼앗긴다”, “외지인 땅은 물론 자식한테 물려준 농지까지 헐값에 매각 명령이 떨어진다”는 등 검증되지 않은 ‘카더라 통신’이 마을 회관마다 난무하고 있다. 여기에 농지가격 폭락으로 지역농협까지 부실해지는 것 아니냐는 위기감마저 팽배하다. 본지는 의성군 농민들의 알 권리를 보장하고 농촌 경제의 생존 길을 모색하기 위해 농지 전수조사의 실체와 위험성, 그리고 미래 대안을 심층 취재했다.

1. 농지 전수조사, 무엇이 진실인가?
최근 의성 관내 면 단위 마을마다 농지 전수조사를 둘러싼 온갖 소문이 꼬리를 물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전수조사 자체는 진행 중이지만, 관행적 농지에 대한 무차별적 강제 처분 명령은 정부 보완책으로 유예·완화된 상태”가 진실에 가깝다.
정부는 1996년 농지법 제정 이후 취득된 전국의 농지를 대상으로 투기 행위와 불법 임대차를 가려내는 전수조사를 추진해 왔다. 당초 취지는 기획부동산이나 외지인의 투기성 농지 소유를 막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현실을 무시한 단속 정책이 발표되자 농촌 현장은 즉각 마비되었다. 고령으로 농사를 짓지 못해 이웃에게 맡긴 농지나 도시로 떠난 자녀가 상속받은 농지까지 단속 대상에 포함될 것이라는 공포가 확산된 것이다.
농민들의 반발과 농지 거래 절벽 우려가 거세지자 정부와 당정은 한발 물러섰다. 명백한 부동산 투기나 불법 개발 행위는 엄단하되, 고령화나 병환으로 인한 관행적 임대차에 대해서는 '농지은행 위탁 시 처분 유예' 및 '자진 정비 기간'을 부여하기로 보완책을 마련했다.
즉, "모든 땅을 강제로 팔아야 한다"는 항간의 소문은 과장된 공포이며, 농지은행 수탁 등 법적 절차를 활용하면 노후 자산인 농지를 지킬 수 있는 길이 열려 있다.

2. 농지가격 폭락과 지역농협 부실화의 메커니즘… ‘농촌판 서브프라임’ 우려
문제는 전수조사 여파로 이미 매수 심리가 완전히 꺾이면서 발생하고 있는 농지 거래 절벽과 자산 가치 하락이다. 이는 단순한 농민 개인의 문제를 넘어 의성 지역 금융의 뿌리를 흔들고 있다.
지역 금융권 및 경제 전문가들이 가장 우려하는 대목은 지역농협(상호금융)의 여신 부실화다.

거래 절벽과 담보가치 하락: 실경작 요건 강화와 양도세 중과 부담으로 농지 매수자가 사라졌다. 환금성이 떨어진 농지의 평가 가격이 하락한다.

LTV 한도 초과 및 상환 압박: 시중은행과 달리 지역농협 대출의 80% 이상은 농지와 토지를 담보로 한다. 농지가격이 떨어지면 기존 대출의 LTV(담보인정비율) 한도를 초과하게 된다.

연체율 급증과 부실채권(NPL) 발생: 농협은 건전성 관리를 위해 농민에게 원금 일부 상환이나 추가 담보를 요구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고령에 소득이 한정된 농가가 이를 갚지 못하면 연체로 이어지고, 농협의 부실채권이 급증한다.

일각에서 이를 2008년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에 비유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부동산(농지) 가격 하락이 담보가치 폭락으로 이어지고, 이것이 지역 금융기관의 연쇄 부실로 전이되는 구조가 닮아있기 때문이다. 복잡한 금융 파생상품이 얽힌 미국 사태와 달리 국가 전체의 금융 위기로 번질 가능성은 낮지만, 농촌 소도시와 지역농협 중심의 국지적 금융 마비는 충분히 현실화될 수 있다.

3. 경자유전의 역설… 농촌 고령화와 인구소멸 가속화의 기폭제
더욱 심각한 것은 헌법상 ‘경자유전(耕자有田·농사짓는 사람만 땅을 소유함)’ 원칙만을 고집하는 기계적 전수조사가 의성군이 직면한 초고령화와 인구소멸을 더욱 가속화한다는 점이다.
의성군은 전국에서도 손꼽히는 초고령화 지역이다. 농가 경영주의 절반 이상이 70대 이상인 현실에서 "농사짓지 않는 자는 땅을 팔라"고 압박하는 것은 현실을 외면한 교조적 행정에 불과하다.

고령 농가 은퇴 사다리의 파괴: 농민들에게 농지는 평생 피땀 흘려 일군 유일한 노후 자산이다. 거래 절벽으로 농지가 매각되지도, 임대되지도 않는 'Dead Asset(죽은 자산)'이 되면 고령 농가는 노후 빈곤에 직면한다. 자산 유동화가 막힌 고령층은 복지와 의료를 찾아 지역을 떠나게 된다.

귀농·귀촌 및 청년농 진입 장벽의 상승: 지주들이 단속을 피하기 위해 기존 임대차 계약을 해지하고 땅을 회수하면서, 정작 의성에 정착하려는 귀농인과 청년농들이 법적으로 안전한 농지를 구하기가 더 어려워지는 역설이 발생하고 있다.

농촌 공동체 해체: 농지 자산 가치 하락은 지역 경제 전체의 소비를 위축시키고, 지역농협의 대출 문턱을 높여 신규 인구의 정주 여건을 악화시킨다. 결국 농지 전수조사가 지방소멸의 시계를 앞당기는 부작용을 낳고 있는 것이다.

4. 구시대적 농정의 한계… ‘경자유전’에서 ‘경자유용’으로의 대전환
전문가들은 행정력을 대거 동원해 농민을 단속하는 현재의 방식으로는 당초 정부가 원했던 농지 보전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사줄 농민’이 없는 농촌 현장에서 소유 규제만 강화하는 것은 농지 방치와 유휴농지 양산으로 이어질 뿐이기 때문이다.
이제 농정 패러다임은 1950년대 농지개혁 시절의 '소유 중심 경자유전'에서 '이용 중심 경자유용(耕者有用)'으로 시급히 전환되어야 한다. 이를 위한 미래 대책은 크게 세 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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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ㅣ 한국농어민신문

1.농지은행의 공공 매입 및 수탁 기능 획기적 강화

고령 농가가 은퇴할 때 농지가 시장에서 헐값에 방치되지 않도록 한국농어촌공사(농지은행)가 적정 가격에 농지를 직접 사들이거나 장기 수탁받아야 한다. 국가가 흡수한 농지를 묶어 청년농, 스마트팜 창업농에게 장기 저리로 임대해 준다면 농지값 폭락을 막고 신규 인구 유입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다.

2.개인 중심에서 법인·기업형 스마트 농업으로의 전환
고령화로 방치되는 농지를 마을기업, 농업회사법인, 들녘경영체 등 공공성 있는 법인이 일괄 수탁받아 기계화·스마트 영농을 추진해야 한다. 청년들은 고된 육체 노동 대신 기술 기반의 농업 경영자로 참여하고, 고령 농가는 임대료와 지분 수익을 얻는 상생 구조가 필요하다.

3.농지 규제의 유연화와 농촌 공간 리디자인
농사지을 사람이 없는 한계 농지는 농촌 융복합 산업(6차 산업), 치유농업, 거점 체류형 시설 등으로 유연하게 전환할 수 있도록 물꼬를 터 주어야 한다. 농촌을 단순한 식량 생산 기지가 아닌 사람이 거주하고 휴식하는 공간으로 재창조해야 관계인구가 늘어나고 지역이 살아난다.

5. 불안을 넘어 의성 농업의 체질 개선 계기로 삼아야
농지 전수조사를 둘러싼 막연한 불안과 ‘카더라 통신’에 흔들릴 필요는 없다. 지금 농민들에게 필요한 것은 정확한 정보와 법적 제도 활용이다. 경작이 어려운 농가는 농지은행 수탁 제도를 적극 알아보고, 지자체와 농협은 농가들이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전담 상담 창구를 운영해야 한다.
정부와 국회 역시 농촌의 초고령화 현실을 무시한 단속 위주의 농정에서 벗어나, 농지 자산 가치를 보장하고 청년농을 육성하는 연착륙 대책을 조속히 확정 지어야 한다.
의성군 농업의 위기는 역설적으로 구시대적 농지 제도를 개혁하고 스마트 농업과 공공 임대 체계로 전환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로 삼아 흔들리는 농심을 잡고, 농민과 지역 금융, 지자체가 합심하여 의성 농업의 체질 개선과 새로운 미래를 준비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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