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변창신(應變創新)
변화에 대응하고 새로움을 창조해 나가다.
고루함을 경계하는 것이 세계의 트렌드가 되고 있다. 디지털 시대에도 아날로그 방식의 행정을 구가하던 일본이 결국 총리를 바꿔 디지털 시대로의 전환을 선언했다. 코로나19 대응에 늦은 유럽선진국들이 2차 펜데믹에 놀라 줄줄이 재봉쇄령을 내리고 있다. 심지어 우리시대 펜데믹을 일으킨 원흉 코로나 바이러스도 거듭 돌연변이를 통해 자신들의 세력을 응변하고 있으며, 동물과 아기에게 전염시켜 새로운 숙주를 만드는 창신을 한다. 이는 고루하거나 진부한 가치관으로는 도저히 세계 역사의 주인공이 될 수 없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집안에서 세계의 정보를 공유하는 인터넷 세상이 왔고, 신정보의 유통이 신경제의 중심이 되는 속도의 가치관이 탄생했음을 알리고 있다.
이는 또 지금 현실이 위기이든 기회이든 변화하지 않으면 도태되거나 지리멸렬해지는 결과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 변화가 위기를 더 최악으로 치닫게 할 수도 있고 기사회생의 기회로 작용할 수도 있다. 하지만 변화를 거부하고 자리 지키기에 연연한다면 앉아서 고사하는 최후경험을 하게 될 뿐이다. 그렇다면 변화란 대체 무엇일까.
위기와 기회의 공통점은 변화라는 것
사실 사람은 누구나 변화에 대응하며 산다. 경험과 지식, 자본과 정치, 선전과 유행 속에서 끊임없이 자신과 타인을 비교하거나 사회적 중심으로 나아가려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강제적인 선택에 놓이게 되고 그것은 항상 변화를 초래하게 한다. 즉, 응변창신(應變創新)에서 응변(應變)은 싫든 좋든 우리를 찾아와 변화를 강요하는 것이다. 창신(創新)은 변화를 토대로 우리에게 가장 알맞은 선택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응변과 창신은 공통점이 변화라는 것일 뿐 응변창신의 결과는 극과 극이다.
그 예로 마스크 무용론을 주장하던 트럼프 미 대통령이 코로나19에 걸린 것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에 가깝다. 영국의 총리도 변화의 대응에 실패해 자국민과 함께 코로나 위기를 체감했다. 반면 한국은 사스와 메르스의 영향으로 착실히 준비해 둔 덕분에 코로나 19위기를 순조롭게 대처할 수 있었다. 때문에 한국의 세계적 모범사례라는 것도 우연한 선택의 산물이 아니라 필연적 선택으로 봐야한다.
결론적으로 그 선택의 결과는 그들에게는 위기를 한국에게는 기회를 주었다. 한국에게 기회란 다름아닌 타 국가보다 대응할 수 있는 상대적 여유시간과 다음 선택을 위한 준비다. 흘깃 코로나19 백신을 구하는 각 국의 태도를 보면 쉽게 이해가 된다. 안타깝게도 정치권에서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답답할 때도 있지만 이처럼 변화의 결과는 천양지차에 가깝다.
그렇다면 우린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 것인가?
변화는 해답이 아니라 연습과 준비라는 것
변화의 단계는 복잡하지 않다. 고 이건희 삼성회장의 어록에 ‘마누라 자식빼고 다 바꿔라’라는 세간의 말이 나돌고 있다. 참인지 거짓인지 약간 비속해 보이기까지 한 말이다. 하지만 변화에 대응(應變)하기위해서는 자신이 가진 생각의 틀부터 바꿔야 한다는 말임을 직감하게 한다. 이 말은 재차 언급하자면 변화의 폭을 바꾸지 않으면 도태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요구되는 변화의 강도와 시간과 공간의 범위를 예측하는데 초점을 두어야 한다. 그 예측에 따라 연습하고 준비한다면 일단 변화의 방향에 적응하는 셈이다. 방향이 준비된다면 정보수집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 인터넷이나 구글링도 중요하지만 인적 넷트웍과 커뮤니케이션이 더 많이 작용한다. 이 단계에서 전문적인 정보전에 다소 약하다할 지라도 도태나 소멸의 위험은 확연히 줄어든다. 변화는 해답이 아니라 연습과 준비이기 때문이다.
응변과 창신은 결국 동의이음어라는 것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나간다는 의미의 창신(創新)은 결코 어려운 말이 아니다. 빌게이츠는 “나는 힘이 센 강자고 아니고, 두뇌가 뛰어난 천재도 아니다. 날마다 새롭게 변했을 뿐이다. 그것이 나의 성공비결이다”고 했다. 찰스 다윈은 “살아남는 것은 가장 강한 종(種)도, 가장 똑똑한 종(種)도 아니다. 그것은 변화에 가장 잘 적응하는 종(種)이다”라고 했다. 그런 관점으로 볼 때 변화에 대응한다는(應變) 것과 새롭게 창조해 나간다는(創新) 것이다. 조건부의 결과로서 서로 동떨어진 말들이 아니라 결국 같은 말임을 알 수 있다. 즉 변화에 대응하는 것은 스스로 새롭게 창조하는 것을 의미한다. ![]()
연일 코로나19가 인간생활을 위협하고 있다. 이미 각 나라간의 인적교류를 확연히 끊어놓고 있다. 그에 따라 중요산업과 경제적 가치기준도 바뀌고 있다. 지금의 3차 펜데믹은 4차, 5차로 이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끝도 보이고 있다. 코로나 백신이 곧 출시될 예정인 때문이다. 그렇다면 백신의 출현으로 세상은 예전처럼 회귀할 수 있는 것일까. 아마도 그렇지 않을 것이다.
코로나19는 지금 세계적 환경을 변화시키고 있다. 그것이 현상적 환경이라면 결과적 환경은 또 다른 응변창신을 요구한다. 단순히 코로나19가 가까운 미래에 종식됐다 해서 응변창신에 성공했다고 볼 수가 없다. 그 때는 지구환경오염이나 또 다른 이름의 코로나가 우리에게 응변창신을 요구할 것이기 때문이다. ( 2020년 편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