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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같은 만남
의성군 신평면 출신의 김형주 군과 안평면 출신 권주희 양은 안평초 안평중학 동기 동창생이다. 신평에서 분교를 다니던 김형주 군이 안평초등에 다니던 권주희 양을 만난 때는 생후 7세 무렵이었다. 그리고 의성에서 다시 만났을 때는 그로부터 20년 후 였다. 형주 군은 대학 재학 중 방학 때 본가 의성에 왔고 주희 양은 호주에 있다가 고향 의성에 잠시 들렀던 때 였다. 그들은 그때 서로 호감을 가졌지만 이렇게 부부로 의성에 정착해 함께 마늘농사를 지으리라고는 그땐 꿈에도 몰랐다. 아무리 어릴 적 동창이라도 서로의 꿈이 달랐던 사람들이 서로의 삶을 함께 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확률이 아니다. 젊은 사람들이 틈만 나면 떠나는 농촌에서 나름 향해가던 자신들이 길을 접고 농촌으로 회귀한다는 것은 더욱 제로 확률에 가깝다. 더군다나 그들은 순수한 의성의 산물들이고 아직 신혼이다. 의성을 주제로 영화를 만든다면 이 부부의 시나리오의 반은 이미 완성이다. 김태리와 류준열이 나온 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후속편으로도 손색이 없다. 이들은 가상이 아니라 실재의 스토리이므로. ![]()
귀농한 연어
의성청년 김형주는 현재 4,000평 마늘농사를 짓고 있다. 대학원에서 의생명학을 전공했다. 도무지 의성으로 귀농할 명분이 없는 길을 가고 있을 때 의성마늘 명인인 부친 김규수 씨가 덜컥 병이 나고 말았다. 당장 불가피한 아버지 병환구제에 나선 길이 의성 귀향의 계기가 됐다. 당시 신혼 초 단꿈은 로맨틱 노스텔지어(낭만적인 향수)에 불과했다. 부랴부랴 정신없이 농사로 바쁜 시기를 지내다 아버지 병환이 차도가 보일 때쯤 김형주 군은 의성의 청년 농부가 다 돼가고 있었다.
“주희(부인) 씨가 내심 힘들었을 텐데 저를 곁에서 많이 도와줘서 지금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농사일도 같이하고 마늘수확도 같이 했지요. 처음엔 고생 많이 했거든요”라며 웃는다.
많은 의성청년들이 고향으로 돌아오고 싶어도 돌아오기 어려운 첫장벽은 바로 농사일이 힘들기 때문이다. 몇 년 전 우리나라에서 연어의 회귀본능을 막은 것은 다름아닌 작은 보를 설치한 때문이었다.
현대 농사란 아무나 쉽게 지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기술과 경험이 필수적이다. 농촌 인력난이 농촌인구의 고령화로 인한 것도 있겠지만 경제적 측면에서 볼 때 가성비가 좋지 않다는 점이 더 어려운 점이다. 즉 투자대비 벌이가 시원찮다는 것이다. 매스컴이나 지면에 나오는 돈 잘버는 농부란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쳤거나 특별한 기술을 터득한 소수의 농민에 불과한 일일 뿐 일반화하거나 표준화해서 생각할 일이 아닌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형주 청년농부는 올해 700평 짜리 딸기 스마트 팜을 짓기 시작한다고 말한다. 이미 농업기술센터에서 과정을 거쳤고 대출상환의 목표까지 세웠다.
“(농사일은) 적정한 규모로 농사를 지어야 생산에서 판매까지 경영합리화 할 수 있더라고요. 너무 크게 투자를 해서도 안되고 작게 해서도 수확과 수익이 맞지 않은 것 같더라고요”라며 4년 차 농부의 농업경험론을 피력했다. ![]()
연어의 꿈을 꾸는 형주네 농원
형주네 농원 농장장 부부는 만평의 스마트 팜을 가지는 것이 꿈이다. 거기에서 경제적 안정과 프렌차이즈 농업을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스마트 팜 농법은 아직 초기단계에 있다. 기술집약적 환경이다보니 다양한 작물에 대한 보고나 표준이 아직 미비되어 있다. 하늘이 주는 대로 시장이 원하는 만큼만 짓던 농사와는 달리 과학적이고 글로벌한 창작 농업의 세계는 젊은 농부들이 가질 수 있는 미지의 세상이다. 때문에 대형 스마트 팜이나 무역중심의 시장개척은 정보화 시대의 뉴에이지 농법만 가능하게 될 것이다. 지구온난화가 가져올 식량난이나 농산물 시장의 변화는 정보와 예측을 다룰 수 있는 인적 자원이 있어야 한다. 인구가 유실된 고향에서 새로운 연어의 꿈을 꾸는 김형주 권주희 부부는 그들이 얼마만큼 미래의 효시가 될지 아직 모른다. 다만 신혼도 누리지 못한 지금 가는 길 끝에 빨간 딸기의 모습으로 혹은 하얀 마늘의 모습으로 보상받을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들을 위해 새로운 한 해가 밝아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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