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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그 어디든 호국성지이고,   그 누구든 보훈가족이다 

하태진 기자 입력 2024.06.23 11:08 수정 2024.06.23 11:08

6.25 발발 74주년 기념을 맞이하며

‘숭고한 희생을 기억합니다’ ‘우리 함께 지킨 역사’   
대구 경북은 물론 전국 주요 길목에 걸린 플랜카드이다. 우리는 그동안 여야가 서로 헐뜯는 문구만을 보았다. 6월 들어 뜻밖에 한목소리를 내니 호국에 관한 한 같은 민족이요 동포라는 마음에 기쁘기 그지없다. 마치 순국선열과 호국영령께서 저 하늘에 별이 되시어 우리 대한민국을 지켜 주시는 것 같다. 70여 년 전 이 나라는 온 강산을 젊고 붉은 피로 물들인 숭고한 희생과 역사가 있다. 때문에 우리나라 어딜 가더라도 호국과 희생의 성지이다. 때문에 그 누구를 만나도 직간접적으로 보훈가족이다.   

우리 옛 역사가 이를 말해 주고 있다. 삼국시대부터 조선을 거쳐 대한민국에 이르기까지 주변국의 침략은 끊이지 않았다. 북쪽에서 남쪽에서 수없이 외침을 받을 때마다 피로서 이 땅을 지켜 왔다. 봄이 오면 온 산하에 피는 붉은 진달래꽃처럼 온 천지에 이 나라를 지키다 목숨 바친 호국영령의 혼이 서려 있다. 우리 모두의 가족사에는 이 나라를 지키다가 숨진 자랑스럽고 가슴 아픈 역사가 있다. 우리가 호국보훈 앞에 저절로 고개 숙이고 하나가 되는 이유이다.  여야가 6월에 들어 한목소리를 내듯.

필자는 의성과 군위에서 성장하면서 어릴 적에 부모님께 6.25전쟁 이야기를 귀가 따갑도록 들었다. 지게 부대원으로서 북한군과 싸웠던 아버지. 북한 공산군의 잔혹한 만행을 직접 본 어머니. 그분들은 1950년 이후 정신적 트라우마를 평생 가지고 사신 분들이다. 어찌 그날을 잊을 수 있으랴.
영천 신녕에 사시는 박00(86세) 할머니는 “신녕 화산에서 들려오는 총소리 포소리에 겁에 질렸던 탓인지 지금도 꿈을 꾸다가 총소리 들으면 놀라서 일어난다”고 하신다. 박 할머니는 “뺄갱이(북한군)가 마을 동장을 칼로 찔러 죽이고 소를 끌고 갔다”고 아버지가 하시는 말씀을 들었다고 한다. “어떻게 사람을 칼로 찔러 죽일 수 있을까” 지금 생각해 봐도 가슴이 뛰고 두렵다고 말씀하신다.
김00할아버지(군위읍 94세)는 “다부동 전투 때 보국대의 일원으로 전쟁에 참전했다. 당시 함께 싸우다 전사한 전우들 얼굴이 지금도 뚜렷하게 기억나며 그날이 생각나면 결국 잠을 못 이룬다”고 하셨다.   

50년대 후반에 결혼한 칠곡군 윤00할머니(89세)는 군복무 중 오른팔을 잃은 남편과 결혼했는데 그동안 생활고로 힘들게 살았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몇 년 전부터 그나마 보상을 받고 있다며 고통 속에서 먼저 간 남편을 아쉬워했다. 이렇듯 어르신들께서 어릴 적 경험한 전쟁의 참상을 들을 때마다 받는 느낌은 70년이나 지났지만 어제 겪은 일처럼 모두 생생하게 증언하신다는 점이다.

필자는  수년 전부터 부모님이 그리울 땐 고향을 찾아 80대 이상 어르신들께 인사도 드리고 6.25전쟁 당시 생사를 넘나든 얘기를 듣는다. 우리 국군과 미군이 낙동강과 팔공산을 두고 반격할 때, 의성, 군위, 성주읍과 영천(신녕면) 지역은 6.25전쟁 당시 최극단의 격전지였다. 이곳 마을 어르신들에게 80평생 살아오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을 여쭈면 이구동성으로 전쟁 때 피난 가서 겪은 일을 말씀하신다. 전쟁에 요행히 살아남은 사람들에게도 평생 잊을 수 없는 트라우마로 남게되는 것을 보면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젊은 영령들의 한은 이 땅에 숨 쉬는 우리에게 무언의 조언을 하고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젠 참전용사들의 증언을 듣고 싶어도 살아 계신 분들이 대부분 90세를 훌쩍 넘기셨다. 전쟁의 참상을 직접 증언하실 용사들도 세월의 뒤안길에서 잊혀가고 계신다. 학창 시절 해마다 6.25전쟁 기념식 날에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그날을---“ 하며 노래를 부르던 필자는 다시 이 땅에서 전쟁을 겪지 않게 해야겠다며 군인의 길을 다짐했었다. 군 복무 중에는 참전용사들을 모시고 전쟁 경험담도 경청하고 질의도 했었는데 세월이 흘러 이제 영상으로만 뵈어야 하니 아쉽기 그지없다.  

6월 25일 6.25전쟁 발발 74주년 기념일이다. 당시 우리 국군 14만 명과 미군 36,940명 포함 유엔군 40,742명이 전사했다. 이제 전사한 장병들의 부모님도 모두 세상을 떠나셨다. 서울 국립현충원에 참배객들 중 6.25 참전용사들의 부모님은 이제 안 오신다. 생존해 계신다면 100세를 훌쩍 넘기신 나이이기 때문이다. 전쟁 당시 전사하신 호국영령들도 대부분 꽃다운 나이에 이 나라를 지키다가 숨졌으니 자식들도 있을 리 없다. 더는 올 사람이 없는 현충원은 한 번도 피지 못한 누구의 삶이 묻힌 곳이다. 비록 가족이나 친척이 아니라도 우리가 한 번이라도 더 현충원에 가서 호국영령과 마주하며 새로운 각오를 다져야 하지 않을까.

호국보훈은 대한민국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이다. 그들은 오늘의 우리가 있기까지 숭고한 희생의 역사를 써내려간 주역들이다. 대한민국이 존재하는 한 기억하고 기려야 하는 영웅들의 죽음이 국가의 바탕색으로 나타난 대한민국 뿌리의 힘이다.
정치권은 6월에만 한목소리를 내는 시늉을 하지 말고 대한민국을 존재하게 한 그들에게서 조국의 뿌리를 찾아야 한다. 보다 지속적이고 세심한 배려로 정치인들이 나서서 호국영웅과 그 가족을 보살펴 주길 바란다. 6.25 젊은 피 흘린 호국의 성지마다 표지판도 세우고 그 역사를 후대에 바로 알려야 한다. 그 역사 속으로 들어가면 그 누구일지라도 멀지 않은 친척 속에 보훈가족이 나타날 것이다. 그곳에서 대한민국 미래의 가치를 찾아야 한다. 그리고 이웃에 보훈가족이 있다면 그날의 전쟁으로 받은 고통을 나누고 위로하고 함께하며 가족처럼 여기며 지내야 한다. 그래야만 74년 전 6월 어느 청년의 죽음이 헛되지 않으리라는 생각 때문이다.

전병규 칼럼image

경일대 / 경북 미래라이프대학 특임교수

“가장 위험한 곳에 가장 먼저 뛰어 든다”라는 신조로 93년 소말리아, 04년 이라크 자이툰 사단에 최초 선발대로 파견됐다. 92년 철원 96년 강릉 대 침투작전에도 참가했다. 전역 직전 사드(THAAD) 국방부 지역 협력관을 역임했다.

의성 금성면 출신으로 현재 중앙일보, 대구 매일, 서라벌신문, 뉴스민 등에 칼럼을 게재하고 있다. 이번 고향인 의성에서 칼럼을 쓰게 되어 매우 뜻깊은 일이라며 화답해 주었다. 정훈장교로서 육군 대령으로 예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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