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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병규칼럼

하태진 기자 입력 2024.08.23 22:16 수정 2024.08.23 22:21

좋은 리더와 좋은 팔로워가 서로 사회를 지탱하는 엔진이자 힘이 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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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병규 칼럼

경일대/의성 미래라이프대학 특임교수

 

“군 지휘관은 지맘대로 하는 자리고, 군 참모는 참고 또 참고, 참을 수 없는 것도 또 참아야 하는 자리다”라는 유머가 있었다. 군 부대에서 나오는 자조적인 우스개지만 과거 수직적 사회에서 발생하는 계급 만능주의를 비꼬는 내용이다. 하지만 현대에 와서는 지휘관이 맘대로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오히려 참모와 팀웍을 갖춰 모든 과제를 대응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AI와 스마트폰 등 정보의 보편화가 리더의 독단을 막고, 민주적 체계적 판단으로 함께 운영하는 집단적 리더십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필자는 군복무 34년 동안 지휘관을 보좌하는 참모직책만 맡았다. 정훈장교로서 육군 소장(별 둘) 4명과 중장(별 셋) 2명을 비롯 대장(별 넷) 5명의 참모로 근무했다.
필자가 보좌한 지휘관들의 경력을 보면 대부분 군의 장성이 되기까지 30년 이상 복무하면서 참모직책도 15년 이상 경험했던 분들이다. 그분들은 참모의 경험과정에서 전문성을 더 갖추고 주변 참모들의 조언을 구하여 상급부대 지휘관이 된 경우가 많았다. 가끔 고교 동창녀석이 “군에서 30년 동안 ‘시다바리’(보좌)만 했냐”며 놀려도 그냥 웃는다. 덕분에 훌륭한 인물들을 보좌하면서 보고 배운 것이 너무 많기에 오히려 생각만 해도 스스로 자랑스럽다. 리더는 곧 팔로워의 유기적 결합체이며 동시에 같은 방향을 보는 목적지향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필자는 첫 출발부터 장성 지휘관을 보좌했다. 처음 고위급 지휘관을 보좌할 때 엄청 위축되어 보고할 때마다 버벅거렸다. 대부분 지휘관은 ‘자신도 참모 때도 그랬다’며 오히려 위로해 주었다. 가열차게 추진한 업무가 잘못되었을 때도 ‘실패를 통해 배운다’며 격려를 받기도 했다. 탁월한 리더는 그를 지지하고 따르는 팔로워의 삶에 선한 영향을 준다. 때문에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이기적인 팔로워가 아닌 리더와 팔로워가 서로 사회를 지탱하는 엔진이자 힘이 되는 법이다.

카네기 맬론 대학의 로버트 캘리 교수는(1997) "조직에 미치는 영향력에 관련 리더의 역할은 20%이고 팔로워 역할이 80%이다"라며 팔로워십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최근에 와서 이 주장은 보편화되었다. 훌륭한 리더라도 전문성을 갖춘 팔로워의 뒷받침을 받아야 성과를 낼 수 있다는 의미다. 혼자서는 장군이 될 수 없다는 ‘독불장군’이라는 말은 현대에도 통용되는 명언이다. 리더를 꿈꾸는 사람이라면 깊이 새겨 볼 말이다. 자신을 보좌하는 참모를 ‘삼고초려’ 해서라도 영입하려는 이유는 탁월한 리더일수록 팔로워의 가치를 알기 때문이다. 

리더란 독립되고 고정된 자리가 아니라 팔로워에 의해 움직이고 함께 성장하는 자리이다. 팔로워에 헌신적이고 기꺼이 소통하는 사람만이 탁월한 리더가 될 수 있다. 조정경기에서 리더를 콕스라고 부른다. 유일하게 노를 젓지 않는 콕스의 리더십은 본인의 체중감량에서부터 크루(조정선수)의 심리와 생활주변까지 끊임없이 소통과 헌신을 기초로 한다. 그러한 리더십이 없다면 콕스는 오히려 방해만 되는 자리이다. 좋은 콕스는 배의 중심을 잡고 크루의 힘을 결집시켜 결승선에서 승리를 가져다준다. 따라서 리더와 팔로워는 목적을 공유하는 운명공동체이기도 하다.

요즘 우리사회는 앞에서 이끄는 사람만 주목받다 보니 뒤에서 미는 사람의 중요함을 잊고 지낼 때가 많다. 리어카를 끌고 오르막을 오를 때 앞에서 끄는 사람보다 뒤에서 미는 사람이 더 힘들 수 있다. 자칫 리어카가 뒤로 미끄러지면 미는 사람은 다칠 수가 있어 더 힘껏 밀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단순히 앞에서 끄는 사람을 리더라고 지칭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뒤에서 미는 사람을 팔로워라 단언할 수 없다. 리어카가 오르막 언덕을 넘기 위해서는 끄는 힘과 미는 힘의 결집이 가장 중요하다. 그러므로 리더와 팔로워는 서로 힘의 원동력인 엔진이 되어야 한다. 그런 엔진에 소통과 헌신이라는 기름이 들어와야 우리 앞에 놓인 오르막 언덕을 넘어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탁월한 리더십이란 더 이상 ‘나를 따르라’가 아닌 소통하는 ‘팔로워십’이 만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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