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박철동(60세)은 30년 전, 직업군인으로서 복무하다 중앙선을 침범한 차량과 추돌사고로 치명적인 중상을 입었다. 친구는 어이없는 이 사고로 거의 10년간 전신 마비가 됐다. 아직 하반신은 완전마비여서 혼자 용무도 볼 수 없고 혼자 휠체어도 탈 수 없다. 하지만 손가락이 조금씩 회복되어 컴퓨터 자판을 2~3초에 한 타씩 칠 수 있다. 덕분에 친구는 요즈음 SNS로 세상과 소통을 하며 긍정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놀라운 것은 이런 몸으로 3년 전에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3권의 저서를 출간했다는 점이다.
어떻게 이런 몸으로 세상에 긍정 메시지를 줄 수 있을까? 물론 아내가 지난 30년간 헌신적인 사랑으로 친구를 이끌었지만 두 사람이 걸어 온 삶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주위에서는 “기적이다”고 자주 말한다. 그렇다. 분명 인간승리이다. 존경하고 스승 같은 친구를 생각하며 파리 올림픽에 이어서 열리는 패럴림픽을 본다.
지난 8월 29일부터 9월 9일까지 파리 24 패럴림픽이 열렸다. 올림픽과 달리 관중과 매스컴은 조용했지만 선수들을 응원하는 소수 사람들의 박수소리는 쩌렁쩌렁 가슴을 울린다.
철인 3종(수영 사이클 육상)경기에 출전한 김형태 선수(47)는 결혼 직전 상견례를 앞두고 감전사고로 두 팔을 잃었다. 이를 감싸안은 아내는 김 선수를 세계에서 유일하게 두 팔을 없는 철인으로 부활시켰다. 김선수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헌신적으로 함께 해 준 아내가 있어 무엇이든 도전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며 경기 보조인으로 함께 뛴 아내에게 무한 신뢰와 감사를 보냈다. 이 두 사람이 서로 의지하며 견디어 온 지난 세월은 어떤 말로도 표현이 부족할 것 같다.
100미터 완전 시각장애인 경기는 비장애인이 가이드 러너로 함께 뛴다. 앞을 전혀 볼 수 없는 선수가 방향을 잃고 결승선으로 골인하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완전 시각장애인과 가이드 러너가 함께 뛰는 이 경기의 세계기록은 놀랍게도 10초 25이다. 비장애인 선수 둘이 같이 뛰어도 이루기 어려운 기록이다. 두 사람은 반드시 동시에 출발해야 하고 결승선에는 장애인이 먼저 골인하지 않으면 실격처리 된다. 두 사람의 체력은 기본이고 보폭부터 숨소리까지 일치해야 기록을 단축할 수 있다. 이 경기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진정한 소통이 어떤 것인지 말해 주는 것이다.
올림픽 양궁처럼 우리나라가 단체전 10연패를 차지한 ‘보치아’라는 종목이 있다. 컬링과 비슷한 종목으로 패럴림픽에만 있는 스포츠이다. 뇌성마비 중증 장애인들만 출전하며 그들을 도울 보조인과 함께 진행하는 경기이다. 양궁처럼 선수 선발도 실력위주로 엄격하게 3차례 시합을 통해 선발하고 있다. 보치아는 대한민국이 구기종목으로 세계 1위인 유일한 스포츠다. 10연패의 위업을 달성한 정호원 선수는 “스포츠가 자신을 세상 밖으로 나오게 했다”며 “앞으로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많은 장애인들이 스포츠를 통해 혼자만의 공간에서 세상 밖으로 나오게 하고 싶다”는 소감을 밝혔다. 그는 말하기조차 힘들어 띄엄띄엄 말했지만 또박또박 심금을 울렸다.
우리가 패럴림픽에서만 볼 수 있는 아름다운 감동은 사랑과 동행 그리고 소통이다. 사랑과 동행은 상대가 있어야 한다. 비장애인이 장애인을 사랑하고 동행하면 된다. 다만,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장애인을 두고 동정과 연민으로만 다가가면 오히려 고통을 가중시킬 수 있다. 친구의 아내처럼 패럴림픽 선수들의 가족처럼 오랜 시간 진정한 사랑과 희생 위에 동행해야 한다. 반면 소통은 서로가 함께 노력해야 한다. 장애인도 세상과 소통하려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 물론 그 의지조차도 생길 수 있도록 도움이 필요하지만 장애인도 당차게 담대하게 세상과 소통하려고 자신을 내 던져야 할 것이다.
보건 복지부(2023) 통계에 따르면 장애인의 88%는 후천적 요인에 기인한다고 한다. 교통사고로 인한 284만여 명의 장애인 등록수만 봐도 짐작이 간다. 미국의 경우 인구 1만 명당 등록 장애인 비율은 18%에 달한다. 우리나라는 8%에 불과하다. 이 수치만 보더라도 등록을 하지 않은 장애인이 많음을 짐작할 수 있다. 장애인에 대한 세상의 편견이 두려워 세상 밖으로 나오지 않은 것이다. 이것이 비장애인이 장애인들을 사랑으로 동행하며 서로 소통해야 하는 이유이다.
추석 연휴가 다가온다. 친적이나 이웃에 불편한 사람들이 있다면 먼저 손을 내밀어 보자. 나란히 함께 걸을 수 있도록 끊임없이 소통해 보자. 그러면 그들은 반드시 세상에 밝은 미소를 던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