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홍상수 감독의 2016년 영화제목이다. 이 영화로 한 때 “저(우리)한테 왜‘이러세요”라든가 “00님은 참 솔직해서 좋으시겠어요”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다. 말의 힘과 그 유용성에 대해 비꼬아 썼던 유행어다.
언론이나 기자가 어떤 기사를 쓰는 것은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최근 경북의 모 일간지에 기획처럼 쓰는 의성군수와 의성군 관련기사는 전형적인 정치적 저널리즘이라고 보여진다. 다만 그 기획기사의 의도가 어디서 어떻게 왜 급출발했는지, 그 기자가 언제부터 정론의 용필(勇筆)이었는지 대저 알 수가 없다. 때문에 저널리즘을 빌려 의성 언론의 나약함을 대신하려는 것인지, 소기의 정치적 계산 때문에 벌이는 일인지도 알 수가 없다. 다만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는 식의 기회주의적 언론은 그 출처나 배경이 모호하다면 가장 저열한 저널리즘의 작태로 보여진다.
언론의 생명은 단순한 저널리즘의 기술적 표현이 아니라 그 끝이 향하는 목적에 있다. 의성군수나 의성군의 발전을 위한 목적이 아니라면 정론직필의 위장복은 한낱 돈이나 권력의 앞잡이가 될 뿐이지 않을까. 적어도 월급쟁이 기자가 편집국의 눈치를 보지 않으려 한다면 일찌감치 프리랜서나 유튜버의 길로 나섰어야 신빙성이 있어 보인다. 적어도 의성군민에게 기사의 순수성을 전달하려 했다면 기자의 기획의도가 분명히 드러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무조건 까발리기식 기사는 그 끝의 목적이 심히 의심스러워 보인다.
그 기사의 시의적절성도 문제다. 거리에 차기군수를 위한 지역선량들이 곳곳 현수막으로 자신을 알리는 시기에 굳이 현 군수에 대한 비판의 날이나 지난 옥티를 건드리는 것이 무슨 뜻이 있는 것일까. 그것을 이런 시기에 교묘하게 군수를 추종하는 무리를 공격해 정의나 진실인 양 호도한다해서 과연 기사꺼리가 될 수 있을까. 그것을 이런 시기에 봇물 터지듯 시리즈로 엮는다해서 과연 대담한 언론이라 칭송할 수 있을까. 다분히 정치적 배후나 후일 어떤 정치인의 대의명분적 복선이 매우 있어 보인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그렇다면 그때는 몰랐고 지금에 와서야 알았다는 뜻인가.
빤히 보이는 계산서 앞에 춤추는 아큐가 되지 않길 바라는 맘으로 고언을 남긴다.
“우리 의성군민한테 왜 이러세요”
“기자님 솔직해서 참 좋으시겠어요”
비록 기레기지만 기레기가 싫은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