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니스트 전 병 규
경일대 특임교수
며칠 전의 일이다. 주차장에서 후진 주차를 하다가 ‘쿵’ 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차가 멈춰 섰다. 등골이 서늘해졌다. 차에서 내려 확인해 보니 다행히 큰 파손은 없었지만, 상대 차 범퍼에 남은 흠집만큼이나 내 마음에도 씁쓸한 생채기가 남았다.
구차한 변명거리는 있었다. 삼십 년이 훌쩍 넘은 나의 낡은 애마는 요즘 차들에 흔한 후방 카메라는커녕 감지 센서조차 없다. 오직 운전자의 감각과 거울에만 의존해야 하는 철저한 아날로그 방식이다. 하지만 곰곰이 복기해 보면 진짜 문제는 차를 대고 빨리 쉬고 싶다는 나의 ‘조급함’이었다. 백미러를 꼼꼼히 살피지 않고, 습관처럼 핸들을 꺾으며 서두른 탓이었다. 디지털 경보음이 울리지 않아서가 아니라, 평정을 잃은 마음속 경보음의 ‘멈춤’ 때문이었다.
그리고 문득 필자의 삶이 이 사고와 묘하게 닮아 있음을 느꼈다. 우리는 ‘속도’가 능력이고 미덕인 시대를 살고 있다. 필자는 그동안 주어진 일을 신속하게 해치우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며 살아왔다. 효율성이라는 명분 아래, 브레이크 없이 앞만 보고 달리느라 내 옆과 뒤에서 누가 힘겨워하는지, 누가 내 손길을 필요로 하는지 백미러로 확인조차 하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인생의 장애물을 만나 멈춰 섰던 순간들, 그것은 내 삶 속 멈춤의 미덕이었다. 만약 운전 중에 브레이크가 파열되었다고 상상해 보라. 인생도 마찬가지다. 승승장구하며 만사형통하던 시절에 갑자기 찾아온 시련은, 어쩌면 잘못된 방향으로 치닫던 나를 멈춰 세운 하늘의 뜻이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 멈춤의 시간을 통해 비로소 더 단단한 걸음을 내디딜 용기를 얻었다.
이러한 '멈춤'과 '살핌'의 미덕은 비단 개인의 운전석에만 머물지 않는다. 나의 안전운전이 도로 전체의 평화를 지키듯,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이 보여주는 '사회적 브레이크'는 국가적인 행사에서 국민의 저력을 보여 주기도 한다.
한 달여 전, 천년고도 경주에서 성공적으로 막을 내린 ‘2025 APEC 정상회의’를 떠올려보자.
‘사회적 백미러’로 들여다보면, 경주 시민들은 물론이고 전 국민이 응원했다. 묵묵히 현장을 지킨 공무원과 경찰,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군인과 소방관들이 있었다. 이들은 자신의 편안함을 잠시 멈추고(Brake), 공동체의 안전을 살피며(Mirror), 각자의 자리에서 기꺼이 ‘인간 비상등’이 되었다. 민(民)과 관(官)이, 제복 입은 영웅들이 도로 위 베테랑 운전자처럼 호흡을 맞춘 결과, 우리는 세계 속에 품격 있는 대한민국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 정부의 외교적 노력과 성공적인 정상회담의 뒷배경에는 일시 ‘멈춤의 미덕’을 보여 준 우리 국민들의 모습이 있었다.
운전 중에 짙은 안개를 만나면 우리는 본능적으로 비상등을 켜고 속도를 확 줄이게 된다. 그리고 백미러를 보고 사방을 살핀다. 이는 “나 여기 있어요”라는 신호이자, “당신도 조심하세요”라는 무언의 표시이다. 서로 비상등이 되어주는 배려, 속도를 늦추고 조심조심 전후좌우를 살피고 나아가는 신중함만이 우리를 사고 없이 목적지로 이끌어 준다.
0.01초를 다투는 F1 자동차 경주 선수들은 브레이크를 잘 밟아야 한다. 코너를 돌 때 적정 속도로 감속하지 않으면 원심력을 이기지 못하고 튕겨 나가기 때문이다. 또한, 수시로 백미러를 통해 뒤따르는 차와의 간격을 살피고, 팀원들의 무전에 귀를 기울인다. 그들에게 브레이크와 백미러는 달리는 것을 방해하는 도구가 아니다. 오히려 끝까지 완주하여 우승하기 위한 필수적인 생존 장비다. 우리에게도 브레이크와 백미러는 필수적인 생존 장비다.
이제 2025년도 서서히 저물어간다. 달력의 마지막 장을 남겨둔 지금, 일 년 동안 쉼 없이 달려온 엔진을 잠시 식히고 내비게이션으로 지나온 경로를 복기해 볼 시간이다. 이는 단순한 멈춤이나 브레이크가 아니다.
잠시 멈춘 이 시간, 이것은 다가올 새해를 다시 잘 달리기 위한 준비이다. 나와 우리 그리고 공동체를 단순한 ‘빠름이 아닌 바름’으로, ‘속도가 아닌 정도’로 이끌어 줄 시간이자 가장 확실한 나침반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