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문화

미안해 정말 미안해

하태진 기자 입력 2025.12.14 22:25 수정 2025.12.14 22:25

독자투고

미안해 정말 미안해      

 하 동 수 

 

70여 년 전, 학교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여름방학 직전의 하학길. 집까지 십 리쯤의 신작로는 군인처럼 짧게 이발한 버드나무 가로수가 나란히 도열해 있었다. 여러 날 가뭄으로 바싹 마른 자갈길. 간혹 버스가 지나가면 흙먼지가 가로수의 큰 키를 넘어 뭉게구름처럼 하늘 높이 펴 올랐다.
집으로 오는 중간쯤 활처럼 휜 도로를 가로질러 가는 지름길인 철로가 있었다. 사람들은 위험하지만 거의 모두 철로를 이용한다. 2백 미터쯤 되는 직선 철길의 오른쪽에는 나지막한 야산이 있고, 왼편은 명경같이 맑은 물이 흐르는 얕은 하천이 있었다.

어릴 적 추억의 에피소드는 대부분 등 하교길에서 일어나곤 했다. 당시는 6.25 전쟁이 끝난 지 채 1년이 되지 않았다. 오른쪽 야산은 6.25 낙동강 격전지 중 한 곳이어서 산기슭엔 나라 위해 목숨 바친 국군 용사들의 급조된 무덤이 올록볼록 솟아 있었다. 등하굣길의 그 길은 지금도 선명하다. 왼편 자갈투성이 넓은 하천 변에는 수많은 개인 방공호가 입을 벌리고 있었다. 당시 아이들의 놀이 중에는 탄피 따먹기가 유행이었고 강변에서 주워온 탄피로 엿장수에게 엿을 바꿔먹곤 했었다.
그날 여느 때처럼 그 철길로 올라섰다. 뜨거운 태양열로 철길은 용광로처럼 이글거렸고 아지랑이가 끝간 데 없이 춤을 추고 있었다. 그에 발 맞추듯 자지러지는 매미소리는 요란하기 짝이 없었다. 바람조차 한 점 없는, 마치 모든 게 정지된 듯한 철길을 혼자 걷자니 무덥고 지루해 슬슬 무료해지기 시작하던 때였다. 하천 중간 쯤 큰바위 위에 방금 내려앉은 주둥이 긴 물총새 한 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긴 꼬리를 깝죽거리는 물총새가 잠깐 쉬었다가 그냥 호로록 날아가 버렸으면 좋았을 텐데 나 보란 듯이 계속 꽁지를 흔들며 호들갑을 떨고 있었다. 나는 무심결에 돌멩이 하나를 주워 그 물총새를 향해 던졌다.
약고 재빠른 물총새가 돌멩이를 맞을 리 만무하고, 그냥 놀라 도망하는 모습을 상상해 던진 돌멩이였다. 그런데 웬걸 내가 던진 돌멩이가 바위에 퉁기더니 물총새 몸통을 때렸고 물총새는 쓰러져서 물을 따라 떠내려가는 게 아닌가. 순간 당황한 나는 50미터쯤 되돌아가서 물 속에 누워 하늘을 보고 떠내려오는 물총새를 손으로 건져 내었다. 내 손안에 든 물총새는 파랑 분홍 보랏빛이 어우러져 너무 아름다운 자태로 눈을 감고 축 늘어져 있었다. 놀란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고, 왈칵 겁이 나기 시작해서 주위를 살폈으나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예쁜 새가 별 생각없이 장난삼아 던진 돌에 맞아 죽다니...’
무섭고 두렵고 미안하기 그지없었다. 나는 그 물총새를 손에 들고 무엇에 쫓긴 양 집으로 마구 달렸다. 땀에 흠뻑 젖어 집에 도착한 나는 아무도 모르게 텃밭 옆 공터에 호미로 땅을 파고 그 물총새를 묻었다. 가슴은 여전히 콩닥콩닥 거렸지만, 어린 시절 나 혼자만 아는 완전범죄(?)였다.

두려움에 방에 들어가 문을 잠그고 형이 올 때까지 이불 속에 웅크려 있었다. 정작 형이 왔을 때 나는 시치미를 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문밖으로 나왔을 땐 해질 무렵이었다. 붉은 하늘을 나르던 제비, 마당을 빙빙 거리던 잠자리, 더욱 크게 들리던 매미소리... 왠지 그 날은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70년이 지난 나의 물총새 사건은 지금 생각해도 너무 미안하다. 자동차를 달리다 로드킬을 당한 고양이나 개, 고라니 등 동물의 사체를 보면 지금도 어릴 적 물총새의 기억이 떠오른다. 그때 그 물총새는 누군가가 기다리던 짝이었을지도 모르고 어린 새들의 먹이를 구하던 어미였을 지도 모른다. 그땐 그저 어린 죄책감에, 불쌍함에 물총새가 내 기억 속에 자리잡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와 보니 그 생명이 물총새로서 세상에서 해야할 기회를 내가 빼앗은 결과가 되고 말았다. 본의는 아니었지만 그 물총새에게 다시 사과한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



며칠 전 독자기고를 하신다 해서 수십 장 A4 용지에 자필로 적어 제게 준 글 중 한 편입니다. 1946년 생 금년 80세입니다.
하동수 님은 10년 전에 대구에서 의성 가음으로 귀촌한 분입니다. 4천여 평 농사도 짓고 글은 그냥 시간 날 때마다 적는다고 합니다. 대구에선 태권도와 관련된 일을 하셨답니다.



저작권자 새의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