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반개(華半開)- ‘채근담’ 중에서
‘꽃은 반쯤 피었을 때가 가장 아름답다’
이른바 온
전히 무엇을 성취한 때보다 그 성취를 향해가는 과정이 아름답다는 말이다.
소민 김종원 작가는 금성면 초전 2리에 주소하고 있다. 우리에게 ‘수줍은복숭아’와 두레생협 배로 널리 알려진 과수농원 주인장으로 인식되기도 하지만, 의성을 벗어나면 현대서각의 거두로 국전 심사위원이자 예술인으로 명성이 더 높다.
소민 김종원 작가는 일찍이 교사였던 부친에게서 한자와 서예를 익혔고 30여 년 전 서각에 입문해 전통서각에서 현대서각으로 진화했다. 현대서각 3인의 창시자 중 한 분인 목암 유장식 선생의 수제자로 낙점받았고 지금도 서울 대전 등에서 소민 작가에게 사사를 받으러 젊은 서각인들이 의성에 들른다.
그의 작품 하나하나는 수개월에서 수년에 이르는 산고의 과정을 거친다. 서각의 모든 작품은 서예와 공예가 합쳐야만 하기에 서각재의 품질과 섬세한 수작업이 필요하다. AI가 인간의 그림을 초월하는 시대이지만 현대서각은 끌질 자국과 소재의 우연성이 겹쳐 세상 단 하나뿐인 창조적 작품이 탄생하게 된다. 그러므로 전통서각이든 현대서각이든 그 가치는 환금할 수 없는 무형의 힘과 땀이 작용한다.
농장의 가을 추수가 끝나면 소민 작가는 예술작품을 위해 글씨를 그리고 끌 날을 세워 겨우내 고독한 시간을 보낸다. 소민(召民)이란 호는 문소국(조문국)의 백성이란 뜻이다. 소민 김종원 작가의 또 다른 호는 묵농(墨農)이다. 농사를 지으며 붓과 먹을 가까이하는 사람이란 뜻이다. 소민 김종원은 그 의미대로 70평생 고향 의성을 떠난 적이 없으며 의성 안에서 예술을 하는 작가이다.
소민 김종원 작가의 집은 성자골 ‘수줍은복숭아’과수원 안에 있다. ‘화반개’ 가족이란 소민 작가의 대가족 형성을 흥미롭게 지칭한 것이다. 인구 소멸 위험군으로 낙인이 찍힌 의성에서 오히려 대가족을 형성한다는 것이 어불성설이지만 소민 작가의 집안은 실제로 내년 2월 2명의 새식구가 늘어난다. 큰아들 내외에서 둘째가 태어나는데 그 손자가 쌍둥이기 때문이다. 재작년 소민 김종원 작가의 첫째아들이 득남해 마을에서 큰 환영이 있었다. 초전2리 성자골에 수십 년 만에 아기울음 소리가 나왔기 때문이다. 내년 2월 아이 둘을 가진다면 소민 작가의 어머님과 함께 무려 4대 8 인의 대가족이 탄생하는 셈이다. 그로부터 유추하자면 현재 소민 김종원 작가의 집안은 ‘화반개’의 가장 행복한 시기가 아닌가 생각된다.![]()
11월 초순 ‘수줍은복숭아’ 농장은 이제야 출하를 끝내고 전지작업을 하고 있었다. 특히 소민 작가 농장의 ‘수줍은복숭아’는 2024년 농업진흥청 대상을 받은 명품이다. 작년에 농장 뒷산에 심어둔 신고배도 베트남 수출을 할 정도로 인기가 있다. 금성면 출향인들의 상당수는 현대서각 소민 김종원 작가를 기억하기보다 ‘복숭아 맛있는 집’으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수줍은복숭아’는 입소문을 타고 전국에서 인터넷 예약으로 판매되는 것이 대다수다. ‘수줍은복숭아’는 당도가 17브릭스까지 나오는 전국 명과이기도 하다. 이제 아들 내외가 합세해 ‘예술하는 농장’이 되었다.
오랜만에 소민 작가의 대가족이 모여 사진을 찍었다. 가족과 재물이 함께 번성한다는 정재창성(丁財昌盛)이란 바로 이런 모습을 두고 하는 말일 듯하다.
수년 전부터 소민 김종원 작가는 자신이 거주하는 성자골에서 복사꽃이 필 무렵 복숭아밭에서 현대서각전을 개최하고 있다. 복숭아밭 전시회라는 이색적인 장소로 군수님도 참석하는 작은 마을예술제로 자리매김을 해왔다. 올해는 초미지급(焦眉之急)의 산불로 아쉽게 전시회가 불발됐다. 소민 김종원 작가는 내년 대가족의 탄생과 함께 의미있는 성자골 현대서각전을 준비하고 있다. ‘아트 로드전’이라 명명된 그 현대서각전은 소민 작가의 ‘화반개’의 완성이 아니라 또다른 ‘화반개’를 위한 출발이 아닌가 하다. 그를 보면 완성을 향해 묵직히 하나하나 이루어가는 대기형 예술가의 모습이 보인다.![]()
해 으스름 가족들이 먹으려 남겨둔 흠과(약간의 흠집이 있는 과일) 한 바구니를 선물받고 ‘수줍은복숭아’ 농장을 나왔다. 소민 김종원 작가의 명사탐방은 허장성세의 거장이 아니라 우공이산의 점수(漸修)를 보는 예혼(藝魂)이 있었다.